[취재파일] 중국, 사드 … 그리고 빌드업
[CMN 신대욱 기자] 빌드업(Build-up)은 말 그대로 쌓아올리는 것이다. 구축(構築)이다. 현대축구의 승리 공식도 빌드업에서 출발한다. 축구의 빌드업은 후방에서 전방으로 공을 운반하는 과정이다. 골을 넣기 위한 움직임이다. 전후방과 공수 가리지 않고 강한 압박과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현대축구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탈 압박과 패스를 통해 공간을 확보해야 ‘0’ 이상을 얻을 수 있다. 볼 컨트롤과 패스, 드리블 등 기본기와 체력이 바탕이 돼야 가능하다.
시장이라는 그라운드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빌드업은 브랜딩 과정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시장의 일정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각종 변수를 뛰어넘는 바탕이다. 최근의 ‘사드 사태’는 ‘K-뷰티’라는 국가 브랜드로 묶인 국내 화장품 산업의 ‘빌드업’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중국 최대 화장품 전문매체 ‘화장품보’가 지난달 17일부터 19일까지 중국 상하이 진장호텔에서 개최한 ‘중국 화장품 유통 100강 연쇄회의’ 현장에서도 이같은 점이 확인됐다. 중국에서 사드로 인한 한국산 화장품 판매 감소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현장에서 만난 중국 유력 화장품 유통상들은 ‘사드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산 화장품 취급 비중이 높다고 밝힌 한 유통상은 ‘사드 이전’보다 1/3 가량으로 판매량이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과 태국, 유럽, 대만 등지에서 대체상품을 찾았다. 특히 일본 상품의 반응이 좋았다. 오히려 한국산 화장품을 주로 취급할 때보다 유통점 전체 매출이 올라갔다. 제품력뿐만 아니라 철저한 가격관리에서 신뢰감을 줬다. ‘사드 국면’이 회복되더라도 다시 한국산으로 돌아갈지 회의적이란 그의 말이 뼈아팠다.
어쩌면 유통 파워에 기댄 성장이나 위생허가 등의 절차를 생략하고 당장의 이익만 따져 자초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빌드업을 생략하고 장신 공격수를 향한 롱볼로, 운에 기댄 축구처럼. 물론 정치적 변수로 인한 유통점의 한국산 화장품 취급 기피나 소비자의 외면이 큰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그렇지만 일본 화장품의 반사이익은 시사하는 면이 크다. 브랜드력은 ‘민족감정’ 등의 변수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다. 세계 최대 온라인몰 티몰이 프리미엄급 브랜드를 모아 진행하는 이벤트인 슈퍼 브랜드 데이에 국내 화장품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초대된 ‘후’나, 중국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이니스프리만 봐도 그렇다.
중국 소비 시장도 상품과 유통 파워에 기댄 성장에서 고객 체험, 브랜드 가치를 따지는 서비스 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온오프라인 통합이라는 ‘신유통’ 단계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소비층도 밀레니얼 세대 중심으로 젊어지고 있다. 그래서다. 새로운 소비층, 새로운 유통 환경에서 공간을 확보하려면 빌드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