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유럽' 러시아 시장 이렇게 뚫자
5년간 9배 증가 지난해 수입국 2위 차지 차세대 유망시장으로 각광
러시아 화장품 시장 현황·진출 전략 분석
[CMN 박일우 기자] 우리나라가 세계 5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부상한 가운데 높은 중화권 쏠림현상이 옥의 티로 지적된다. 수년째 지속되는 수출국 다변화를 위한 노력 속에 아세안과 유라시아 시장이 차세대 수출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중 유럽국가이면서도 우리나라와 인접해 지리적 이점을 지닌 러시아 시장에서 최근 K뷰티 인기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에 CMN은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러시아 화장품 시장 진출 전략’ 보고서를 바탕으로 러시아 화장품 시장을 조망해봤다.
인구 1.4억 동유럽 전체 40.3% 차지
러시아는 인구 1.4억명을 보유한 세계 11위, 유럽 5위의 화장품 시장이다. 2018년 러시아 화장품 시장규모는 103억250만달러로 동유럽 18개국 전체 매출의 40.3%를 차지했다. 러시아 여성들은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고 치장하는 것을 필수적이라고 인식해 메이크업과 피부 관리에 관심이 많다. 15~6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68.9%로 높아 여성의 경제적 위상과 구매력이 높다.
더불어 도시 거주 인구가 전체 인구의 74.4%로 도시화율이 높은 점도 화장품 시장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5년 간(2014~2018년) 화장품 시장은 연평균 6.2% 성장률을 기록했다.
기초화장품 5년간 연평균 8.9% 성장
최근 러시아 화장품 시장의 큰 특징은 기초화장품 성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수분크림, 클렌저, 마스크팩 등 기초화장품은 화장품 시장의 21.3%를 차지하며 지난 5년간 연평균 8.9%의 성장률을 보였다. 시장점유율 또한 2013년에 비해 2.6%p 증가했다.
기초화장품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분크림이며 이 중에서도 안티에이징 기능을 갖춘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마스크팩은 2018년 매출이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하며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최근에는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한 LED 마스크가 출시되는 등 가정에서도 전문 클리닉 수준의 피부관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뷰티 디바이스가 각광받고 있다.
매출 2위 품목인 두발용 제품은 전체 시장의 15.6%를 차지한다. 2018년 두발용 제품 매출은 16억290만달러로, 이 중 샴푸 매출 비중이 42.8%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매출이 높은 품목은 염색약인데, 러시아는 다른 나라(미국 12.9%, 중국 6.3%)들에 비해 염색약 소비 비중이 22.8%로 특히 높게 나타났다. 리서치 기업 GlobalData에 따르면 두발용 제품 시장에서 화학성분 사용을 지양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며 헨켈(Henkel), 로레알(L’Oreal) 등 매출 상위기업들은 천연성분을 주원료로 한 신규 브랜드를 앞세우는 추세다. 헤어 펌이나 유연제 등 화학 성분이 많이 함유된 품목의 경우 5년 새 매출이 절반이상 감소하기도 했다.
메이크업·향수·네일제품 매출 감소세
향수는 러시아 화장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 번째로 높은 품목(15.2%)으로, 러시아는 세계 평균(10.4%)에 비해 향수 소비량이 많다.
도시 거주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여성의 96%, 남성의 84%가 향수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향수 개수는 4개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향수 매출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2014~2018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4.3%로 주요 품목 중 가장 낮았다. 향수는 2013년 화장품 매출의 16.6%를 차지하는 2위 품목이었으나 5년새 매출 비중이 1.4%p 감소했다.
색조화장품의 경우 2018년 매출은 경기침체, 트렌드 변화 등 영향으로 전년대비 1.9% 감소했다. 향수와 마찬가지로 경기침체에 따른 구매심리 저하와 기업들의 가격 할인 정책에 따라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이 선호되는 트렌드도 시장 위축 원인으로 꼽힌다. 주근깨나 광대뼈 등 결점으로 인식됐던 얼굴 특징들이 되레 개성있는 스타일로 유행하며 색조화장품보다는 피부관리 제품 및 서비스에 지출을 늘리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네일 제품 매출은 2017년부터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8년에는 전년대비 16.8%나 급감했다. 러시아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네일숍에서 전문적인 케어나 네일아트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관련 매출이 크게 줄었다.
레뚜알 등 H&B전문점 42.5% 점유
유통은 뷰티전문점, 드럭스토어 등 H&B전문점가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레뚜알, 매그닛 코스메틱(Magnit Cosmetic), 리브 고쉬(Rive Gauche), 일드보떼(Ile de Beaute) 등 H&B전문점 매출이 2018년 기준 전체 시장의 42.5%를 차지하고 있다. 레뚜알은 고가 브랜드를 주로 취급하며, H&B전문점 중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매그닛 코스메틱은 러시아 2위 유통기업 매그닛이 운영하는 드럭스토어 체인으로 러시아 전역에 2,800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매출 비중은 5.5%로, 2014~2018년 연평균 20.9%의 성장률을 보이며 유통채널 중 가장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모바일 가입률 세계 9위, 성인 인터넷 사용률 세계 39위로 정보통신기술 보급 수준이 양호하며, 최근 물류시스템이나 전자결제 등 관련 인프라가 발달하면서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오존(ozon.ru), 얀덱스 마켓(market.yandex.ru) 등 다수 온라인 쇼핑몰이 화장품을 취급하며, 최근 오프라인 뷰티 전문점들도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잇달아 개설하며 인터넷 쇼핑 시장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방문판매는 매출 감소세이나, 여전히 전체 시장의 13.0%를 차지하는 주요 유통채널이다. 방판은 2000년대 후반 화장품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했었으나, 도시를 중심으로 H&B전문점들이 들어서면서 오프라인 매장 접근성이 높아지고, 온라인 쇼핑 이용자가 늘면서 비중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에뛰드, 홀리카홀리카, 토니모리 등 인기
시장점유율이 높은 주요 기업으로는 로레알(10.5%)을 필두로 질레트(6.9%), 에이본(5.0%) 등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 로컬기업인 칼리나 콘체른(Kalina Concern)이 4.5% 점유율로 헨켈(4.4%)을 제치고 전체 4위, 로컬 1위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칼리나 콘체른은 치스따야 리니야(Chistaya Liniya), 체르니 젬슉(Cherny Zhemchug) 등 인기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접 동 유럽 국가들에서도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외 주요 로컬기업으로 패벌리크(Faberlic), 페르바예 레쉐니에(Pervoe Reshenie), 스플랏(Splat)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브랜드 중에선 에뛰드하우스, 홀리카홀리카, 더샘, 잇츠스킨, 토니모리 COSRX, 엘리자베카, 시크릿키, 팜스테이, 미즈온 등이 러시아 최대 검색 포털에 상위 노출되는 인기 브랜드다.
천연성분, 비건, 크루얼티 프리 제품 각광
최근 러시아 소비자 트렌드는 ‘자연(Nature)’과 ‘자연스러움(Natural) 추구’로 요약된다. 천연성분만 사용하고 화학성분이 첨가되지 않은 프리(Free) 화장품이 인기다.
동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비건(Vegan) 화장품이나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 제품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메이크업은 화려한 것보다 꾸미지 않은 듯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베이스 메이크업의 경우 여드름, 뾰루지 등 피부 트러블을 가려주되 최대한 피부색과 비슷하고 가벼운 제형의 제품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아이메이크업도 본연의 눈썹결과 눈매를 살리는 아이브로우와 연한 색 아이섀도, 옅은 색조를 띤 립밤이나 틴트 등이 많이 팔린다.
특히 본질적 피부 건강관리에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미세먼지 등 공해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안티폴루션 제품, 피부 노화를 늦춰주는 안티에이징 제품, 보습 효과가 강화된 수분크림 등 기능성화장품의 인기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경제침체로 실용적·현명한 소비 증가
러시아는 2014년 서방의 경제 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위기를 맞으면서 이후 가처분소득이 감소해 현재 소비심리가 좋지 않다. 이에 구매력이 낮아진 소비자들은 저렴한 화장품을 구매하거나 멀티기능성 제품을 찾는 등 실용적인 소비 경향을 보인다. 또 컨디셔닝 샴푸, 수분크림 겸 선크림 등 멀티기능성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다만 러시아 소비자들이 아름다운 외모와 피부 관리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불황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소비량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소비자 1인당 화장품 소비 개수는 24.8개로, 2013년(23.3개)에 비해 소폭 늘어났는데, 이는 2018년 세계 평균 소비량(18.9개)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실용적 소비와 더불어, SNS 등을 통해 향상된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현명한(Smart) 소비도 주요 소비 트렌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지대하지만, 그들이 홍보한다고 해서 무조건적 구매는 하지 않는다.
대신 뷰티에 전문성을 가진 오피리언 리더들의 냉정한 평가를 신뢰하는 경향이 높다. 이에 따라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글로벌 브랜드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품질을 신뢰하지 않는다. 품목별로 효과가 우수하다고 알려진 브랜드 제품이나 상품 라인을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등 까다로운 구매 패턴을 보인다.
효과가 검증됐다면 기존에 즐겨 사용하던 제품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바꿔 구매할 의사를 갖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적 가성비 높은 K뷰티 인기 ‘상승세’
한류 확산에 힘입어 K뷰티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식 메이크업과 한국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식 10단계 피부 관리법’이 러시아에서도 공식처럼 알려지고 있다. 경제 불황 등으로 구매력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리 제품이 유럽 제품의 대체재로 인식되는 점도 K뷰티 인기를 거든다.
이에 러시아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색조·기초화장품(HS 3304)은 1억3731만달러를 기록, 프랑스에 이어 수입시장 2위를 차지했다.
이는 2014년(1551만 달러)에 비해 8.9배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대부분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액이 주춤한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가 차세대 먹거리로 러시아 시장에 보다 주력해야 할 이유다.
상기 분석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3가지 진출 전략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상품전략으로, 천연성분의 가성비 높은 기초화장품을 꼽았다.
한국무역협회 김현수 수석연구원은 “현지 니즈를 발빠르게 포착해 참신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한편, 다양한 멀티기능성 품목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며 “식물, 허브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하고, 제품 디자인이나 홍보 등을 통해 천연화장품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도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두번째로 유통전략은 H&B전문점과 전자상거래 채널을 동시에 공략하라는 주문이다. 현재 대세 유통인 레뚜알 등 H&B전문점은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고객층이 부족한 우리 기업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으며, 아직 비중이 낮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은 폭발적 성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배경에서 특별히 균형감을 강조했다.
마지막 전략은 기업과 소비자 간 상호 피드백 활성화다. 모든 기업이 다 하고 있어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일 수 있지만, 가격을 제외하고 구매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긍정적인 상품후기’인 러시아 소비자 특성을 감안하면 매우 중요하다는 평가다. 반짝 히트치고 말 생각이 아니라면, 자사 제품에 대한 소비자 모니터링과 이를 반영한 지속적인 제품 개선 노력은 특히, 러시아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