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K뷰티 위기' 이대로는 안된다!

'빠른 성공의 함정'에 빠져…잘하는 주력분야 히든챔피언 돼야

이정아 기자 leeah@cmn.co.kr [기사입력 : 2019-11-08 10: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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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기린화장품 영업총괄 이사 / kirincos@hanmail.net


[CMN] 지난 10월 열린 일산 킨텍스와 오송 뷰티박람회에서 K뷰티가 위기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만 23년을 장업계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에 K뷰티가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2016년 갑자기 몰아닥친 사드 사태의 위기로 촉발되긴 했지만 그건 K뷰티의 위기를 앞당긴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사드 위기가 아니었더라도 이미 중국의 기초 화장품 기술은 한국의 80프로 이상을 따라왔고 색조제품에서만 조금 뒤처질 뿐이다.


근본 원인은 K뷰티가 말그대로 ‘애매하게 끼인 브랜드’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조사는 물론이고 브랜드를 유통하는 유통업자, 책임판매업자, 정부, 정치인들을 비롯해 한국의 뷰티산업 관련 모든 이들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언론사에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보도를 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동안 K뷰티는 한류와 K팝을 등에 업고 조금 편하게 그리고 친숙하게 세계 시장에 접근했을 뿐, 그 이상의 뭔가를 제시할 한방이 없었다. 다른 한국 산업이 그랬듯 화장품 산업 역시 ‘빠른 성공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 몇년전부터 뷰티산업의 성장세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다른 주력 산업들(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등)이 부진을 겪으니 그제서야 화장품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호들갑만 떨었지 화장품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이렇듯 한국의 뷰티는 초기의 시장 접근법부터 잘못됐다. 한국의 미는 예로부터 피부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해 온 게 전통이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컬러를 앞세운 색조의 미가 전통이다. 그럼 당연히 한국은 피부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에 기술개발이 집중됐어야 한다.


기초화장품 주력인 회사가 색조시장과 헤어제품 시장에 뛰어들고, 마스크팩 전문회사가 기초와 색조시장에 뛰어들고, 향후 닥쳐올 미래는 생각도 않고 거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건 화장품업계 전체를 소멸시키는 일이다. 자기가 잘하는 주력분야의 히든챔피언이 되는데 모든 걸 몰두하지 못했다.


또하나 첨언하면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는 충북 오송에 위치하고 있다. 연구원, 디자이너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판교 밑으로는 근무를 안하려고 하는 게 요즘 세태다. 여기에 진정으로 정부가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정말 가능성 있고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연구인력 등을 구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부담하기 힘든 급여, 복지 등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식약처 등 정부 관련 부처에서는 공장설비자금 지원, K-팝과 연계한 전시회 기획 등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 다인 현실이다.


또 하나 제조사의 입장에서 얘기하면 OEM 등 상담을 하다보면 EWG 1, 2등급 등 최상의 원료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의뢰하면서 납품가는 무조건 싸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건 제조사를 죽이는 것 아니면, 제조사에게 사기꾼이 되어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본인이 제약을 비롯 화장품 관련 영업을 25년간 해 온면서 배운 철학이 있다. 첫째,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 그게 있다면 사기다. 둘째,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세째 억지로 되는 건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3가지를 나의 영업철학으로 여기고 있으며 간혹 후배들에게도 전한다.


얼마전 우리 회사로 전화가 왔다. 모 대학연구기관에서 신물질을 개발했는데 이걸 어떻게 상품화 해야할지 당사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당사는 염색약, 샴푸 등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이다. 현재 1차 실험을 거친 단계인데 아마 상품화가 가능하면 염색약 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당사는 이 대학 연구기관과 끝까지 결과물을 도출해내고자 최선을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지금까지 문제 제기한 K뷰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자기 회사가 잘하는 분야에 주력하면서 좋은 소재, 원료를 대학 등 연구기관과 같이 개발해 상품화하고 그 분야에서 진정한 히든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2등 분야까지도 매각하는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의 기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장인정신’을 앞세운 일본, ‘신기술’을 앞세운 미국과 유럽, ‘유기농과 천연’을 앞세운 호주, 그리고 ‘막강한 구매력’을 앞세운 중국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한국의 K뷰티가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최근 두차례 국내 전시회에서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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