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화장품 수출, 통계, 함정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CMN 박일우 기자] 통계와 관련해 연전에 취재파일에서 한 번 다뤘던 적이 있다. 요약하면 ‘거짓말엔 3가지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격언을 인용해 기준에 따라 다른 결과치가 나오는 통계의 오류를 짚은 내용이었다.
기자들은 통계를 곧잘 인용한다. 공신력을 갖춰야해서다. 그러다보니 통계를 잘못 인용해 기사에 오보 아닌 오보가 나가는 경우가 있다. 위에 언급한 통계의 오류일 때가 대다수지만, 통계 자체가 잘못된 경우도 있다. 다양한 통계를 접하다보면 어떤 통계는 정확한 기초데이터가 뒷받침되지 못하거나, 어떨 땐 통계 기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국내 한 증권사에서 매월 화장품 수출 데이터를 리포트로 발표해 여러 매체가 이를 바탕으로 월별 수출실적 기사를 쓴다. 그런데 이 월별 수출실적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매월 1일 잠정집계해 발표하는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다. 리포트 발표 실적이 산자부보다 15~20% 가량 적게 나오는데, 아무리 잠정치라고 해도 그 차이가 너무 크다.
왜 그럴까?
이 증권사가 최근 내놓은 3월 화장품 수출실적 관련 리포트를 보면 이전 리포트에서 보지 못했던 괄호가 나온다. ‘화장품 수출실적’이란 단어 뒤에 괄호를 치고 (HS Code 3304 기준) 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2월 리포트까진 없던 문구다. HS Code는 1988년 국제협약으로 채택된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를 뜻하며, 10자리 숫자로 돼 있다.
그러면 이 리포트에서 그동안 없던 문구를 왜 새로 넣었을까?
이 리포트는 관세청 산하 기관격인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서 데이터를 받아 매월 화장품 수출실적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화장품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화장품 품목의 범위에 대해 명확하게 알지 못한 나머지 오로지 ‘3304’ 코드로만 수출실적을 집계하는 오류를 범해왔다. 여차저차 이런 오류를 알게 된 뒤 이를 보완하기 위해 3월부터 괄호 안에 새로운 문구를 넣게 된 것이다.
화장품 관련 통계를 낼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HS Code가 3304인 것은 맞다. 2019년 기준으로 보면 전체 수출금액 중 3304 코드로 시작하는 실적의 합이 약 80% 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해 전체에서 20% 정도 빠져 있다는 의미다. 이 20% 실적엔 ‘3303’ ‘3305’ ‘3307’ ‘3401’로 시작하는 화장품 품목들이 포함돼 있다.
위 코드에 해당하는 품목을 살펴보면 헤어케어류, 바디케어류를 포함해 최근 주력 수출품인 시트마스크류에다 물휴지류까지 들어가 있다. 20%라는 수치도 중요하지만, 저런 품목들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3304만 가지고 화장품 수출 동향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현재 화장품으로 분류하는 HS Code(10자리 코드)는 3303, 3304, 3305, 3307, 3401로 시작하는 29개가 있다. 증권리포트에서 이를 모두 세세하게 집계하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3304 기준’이라고 추가 표기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통계의 오류는 일종의 함정이다. 통계를 인용할 때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는 입장이라면, 공신력 있다고 무조건 인용하지 말고 먼저 의심하는 비판적인 시각을 습관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참고로 기레기 소리까지 들어가며 기자질한 세월이 꽤 되는데, 비판적으로 의심부터 하고 시작해서 욕을 먹거나 결과가 나빴던 적은 내 기억엔 없다.